수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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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botage 2018. 12. 13. 03:45

희영은 저번에도 여성 문제 다루지 않았어요? 관심사를 좀 넓혀도 될 것 같은데. 선배의 지적에 당신은 이 사안이 얼마나 중요한지, 왜 그 지면에서 다루어야 하는지 설득하려 노력했다. 그때 당신은 몸이 뜨거워지는 경험을 했다. 써야 하니까 쓰는 것이 아니라, 쓰고 싶어서 쓰는 것, 마음을 다해서 쓰고 싶다는 마음이 불처럼 당신 몸을 휘감고 아프게 하는 느낌을 받았다. 그런 마음으로 사람들을 설득하려 노력한 것은 처음이었다. 아내 폭력 문제가 주제 선정 회의에서 통과되고 당신과 희영은 쉼터를, 여성의전화를 찾아가고, 가정폭력방지법 제정 범국민연대의 관계자와 인터뷰를 하고 남편에게 살해당하거나 남편을 살해한 여성들의 사례를 수집했다.

 그 과정에서 스물한 살의 당신은 화가 났다. 여자가 맞아서라도 가족은 지켜져야만 하는 것이라는 가족주의에, 살려달라고 공권력의 보호를 청했던 수많은 여자들이 결국 살해당해야 했다는 사실에 대해서, 당신은 걷다가도, 밥을 먹다가도, 심지어 잠을 자다가도 깨어 분노에 휩싸였다. 분노는 배출될 수 없는 독처럼 하루하루 당신 몸에 쌓였다. 당신은 당신의 분노가 무엇 하나 바꾸지 못하고, 그저 당신 자신의 행복을 깨뜨리고 있다는 생각에 슬픔을 느꼈다. 가까운 사람들을 대할 때, 심지어 당신 자신을 대할 때 당신은 예전보다 더 엄격하고 까다로운 사람이 됐다. 짜증을 쉽게 냈고, 작은 일에도 화를 냈다. 아무것도 바꾸지 못하면서 자기 분노 속에 갇혔을 뿐이라고 당신은 생각했다. 그건 당신이 바라는 바가 아니었다.

 

 

최은영, <몫>